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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후기, 민식이형, 형은 도대체 못하는게 뭐야?

by 붓짜 2019.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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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하늘에 묻는다 후기, 민식이형, 형은 도대체 못하는게 뭐야?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를 보고 왔다.

2주 전, 쥬만지를 너무나도 재미없게 본 뒤로 시동과 백두산을 거르고 캣츠까지 거른 뒤에 선택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재밌다. 뭐 고증 논란부터 해서 몇 가지 요소들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지만 엄연히 이건 다큐가 아니라 한 편의 영화다.

그리고 장영실이란 인물은 역사적으로 상세하게 기록이 남아있다기 보다는 두루뭉술하게 기록되어있어 현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이기에 고증 논란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거 아닌가 생각된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관람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전개, 뻔한듯 뻔하지 않은 여러 웃음포인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피말리는 정치질까지. 

정말 잘못하면 한 없이 딱딱할 수 있는 역사라는 것을 보다 말랑말랑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수작이 아닌가 싶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으니 영화를 미관람하신 분들 께서는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후기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위인전에 꼭 이름을 올리는 두 분, 세종대왕과 장영실 사이에 있었던 일에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낸 영화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시간이 이 때에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아침, 점심, 저녁 정도의 감각만 있을 뿐 정확히 지금이 몇 시 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농업사회에서 품앗이를 한다고 해도 한낱 한시에 모여야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들쑥날쑥 해버리면 작업도 진행이 안될뿐더러 영화 내에서 얘기했듯이 농사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쳐 생계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또한 상업에 있어서도 시간은 정말 중요한데, 간단히 얘기해서 명품백이 50%할인하는데 몇 시에 열린다는 얘기는 없고 그저 31일 해질녘쯤, 1월1일 아침, 이런식으로 공지를 해버리면 어떤 느낌이 들지 대충 감이 온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손익분기점은 380만명이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손익분기점

이러한 시대에 세종대왕에게, 아니 조선에게 시간을 선물한 것이 바로 장영실이다. 뭐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그 이전에 무수히 많은 시도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상황에 맞게 그들 나름대로의 체계적인 룰과 시스템이 있었겠지만.


뻔할 수 있는데 뻔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가는 민식이형의 연기는 정말이지 감탄만 나온다.

솔직히 민식이형에 대한 이미지는 악마를 보았다 장경철, 범죄와의 전쟁 최익현 이 두 가지 모습이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볼 때마다 무서움 반, 웃음 반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곤 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참 좋은 연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천의, 검색을 해보니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로 고대 중국의 우주관 혼천설에 기초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세종과 장영실이 최초로 만든 것인건가, 아니면 세종&장영실 듀오가 만든 혼천의는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건가.


*혼천설 : 고대 중국의 우주 구조에 관한 대표적인 학설, 천동설 중 하나로 노른자-땅, 흰자-하늘, 껍데기-무한대로 봄


만 원 자리 앞에는 세종대왕님이, 그리고 뒷 면에는 이렇게 혼천의가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표준시계가 되어준 자격루, 영화에서처럼 자격루가 울리면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려줬는데 매 시마다 꼬박꼬박 알려준 것은 아니고, 도성의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과 통금&통금해제 시간, 그리고 낮12시를 알려줬다고 한다.

원형은 사라지고 없으며 복원된 작품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장영실 발명품 볼 수 있는 곳

중국의 천문관측기구들을 조사하고 돌아온 장영실, 세종은 그에게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관직에 앉을 수 있게 해준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내린 직급은 상의원 별좌, 왕실물품을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인데 오늘날로 치면 6급 공무원이라고 하니 이거 뭐 오늘날로 치면 어떻게 비유해야하나.

애초에 관직에 도전할 수 없는데 특채로 고위 공무원이 된 케이스라고 해야하나. 


장영실 뿐만 아니라 장영실이 만든 여러 기구들도 자세한 설명은 없고 그저 한 줄 두 줄 정도 되는 짤막한 설명만이 남아있어서 오늘날에도 원형을 구현하기에는 썩 쉽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장영실과 장영실이 만든 여러 발명품들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는 것은 중국, 당시 명나라의 눈치를 많이 봐서 그런 것 아닐까 추측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로지 황제만이 천체, 시간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단연 장영실을 앞세워 `주도적인 조선이 되자` 라고 외치기엔 호락호락하지 않는 상황.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결말, 장영실이 만든 안여(=가마)가 부서지고 이로인해 처벌을 받았으며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것은 사실, 하지만 이후 장영실의 행보는 정확하게 기록된 바가 없다.

사실 영화 마지막 사건, 가마가 부서지는 일(1442년)이 일어나기 4년 전에(1438년) 세종이 주도한 천문 사업 프로젝트는 완료가 된 상황이었다. 

세종으로서는 천체관측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문자, 한글까지 만드는데 명나라의 눈치가 이만저만 보이는게 아닐터. 천체 관측 사업도 얼추 완료됐겠다, 한글도 편찬해야겠다, 명나라 눈칟치도 슬슬 살펴야겠다, 장영실을 던지고 한글을 편찬한 것 아닐까.

그래서 장영실이 처벌을 받은 뒤 사라진 것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실제로 한글창제가 이듬해인 1443년에 이뤄진 걸로 보면 세종대왕과 장영실 이 둘의 피보다 진한 우정이 실로 빛을 발한 기적의 연속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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